서울시 광진구 중곡1동 643-4호
서울시 성동우체국 사서함 10호
메리놀외방전교회 한국지부, 143-221

        메리놀 외방전교회 한국지부 임원 소개
        메리놀 외방전교회 한국지부 목적 및 사업내용
        메리놀 외방전교회 한국지부 역사
         
1. 창설
         
2. 메리놀회의 명칭 유래
         
3. 한국진출
         
4. 평양지목구 및 대목구 시기
         
5. 발전 및 변모
         
6. 사도직 활동
        메리놀 외방전교회 한국지부의 활동 사진 자료
        메리놀 외방전교회 홈페이지
        게시판
 
임원
 
 
 

성 명

함제도 (Gerard E. Hammond M.M.)

생 년 월 일

1933년 8월 15일

축 일

10월 16일

E - M A I L

mkselkor@nuri.net

주 소

서울시 광진구 중곡1동 643-4호

경 력 사 항

메리놀회 한국지부장

 

성 명

길갈멜로 (Carl Costa M.M.)

생 년 월 일

1944년6월2일

축 일

7월 16일

E - M A I L

mkselkor@nuri.net

주 소

서울시 강서구 화곡본동 46-5호

경 력 사 항

메리놀회 한국부지부장 경리담당

 

성 명

권 제라르도(Gerald O' Connor M.M.)

생 년 월 일

1938년 2월 5일

축 일

2월 6일

E - M A I L

mkselkor@nuri.net

주 소

서울시 송파구 가락동 600

경 력 사 항

천주교 가락시장 성당 주임
메리놀회한국지부 참사위원


 

 

 

       본회 활동의 목적은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곳에 교회를 심는 것과 특수 사목 활동을 하는 것이다.

       주로 본당 사목을 해왔다. 본당을 신설하고 발전시키며 그 본당이 자립하면 교구에 이양하고

       다른곳으로 가서 다시 새로운 본당을 시작하는 방식으로 활동하는 것이다.

 

   메리놀회 한국지부의 사업 내용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쟌쥬강의 집(경로수녀회) 영성지도를 하고 있음 (서울대교구)

     가락동 시장본당에서 주임을 맡고 있음(서울대교구)

     삼성의료원에서 협조사제로 활동(서울대교구)

     나환자들을 위한 구라회를 운영하고 있음

     소망의 집 지도신부

     가톨릭신학대학교에서 지도 신부로 활동하고 있음(서울대교구)

     한국외방선교회 지도 신부로 활동하고 있음(수원교구)

     남양본당 주임신부로 활동(수원교구)

     시흥시 포동성당 주임신부로 활동(인천교구)

     청주교구 연풍성지 지도신부로 활동하고 있음

     인천교구 가좌동성당 주임신부 활동

     인천교구 성가병원원목신부로 활동

     인천교구 강화 공소에서 활동

     인천교구장으로 활동

     부산교구 성분도병원원목신부로 활동

     부산교구 메리놀병원원목신부로 활동

     부산교구 마리아 사제운동 본부 운영

     메리놀 외방전교회 한국지부 소속의 신부 5명이 중국으로 파견되어 활동중 

 



 
 


메리놀 마크

 

메리놀외방전교회한국지부 外邦傳敎會韓國支部          

MARYKNOLL MISSIONERS       

 

 

  아시아 지역의 전교를 목적으로 1911년 6월 29일 월시(J.A.Walsh,1867~1936) 신부와

  프라이스(T.F.Price)신부의 발기(發起)에 의해 창설된 미국 최초의 외방전교회.창설 당시의

  명칭은 '미국 외방전교회'(Catholic Foreign Misson Society of America) 였으며,

  메리놀 형제회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정식 명칭은 '메리놀외방전교회'이나 '메리놀회'로

  약칭하기도 한다.

  교황청 인류 복음화성의 지시를 받으며 본부는 미국 뉴욕주 오시닝 (Ossining)에 있고,

  한국 지부는 서울시 광진구 중곡1동 643-4호 소재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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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창설

  메리놀 외방전교회의 창설을 주도했던 월시 신부는 1867년 2월 24일 미국

  메사추세츠(Massachusetts)의 켐브리지(Cambridge)에서 출생하여 성 요한

  신학교(St. John's Seminary)를 졸업한후,  1892년 5월 20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메사추세츠의 보스톤(Boston) 교구에서 사목하면서 전교지 (傳敎誌)

  (그 먼 땅에)(The Field Afar)의 간행을  담당하고 있던 그는 이 잡지를 통해

  미국의 가톨릭 신자들에게 아시아 전교의 중요성에 대해 널리 알리기도 하였다.

  한편, 진리 (The Truth)의 주필(主筆)로 있던 노스 캐롤라이나 (North Carolina) 롤리(Raleigh) 교구의

  프라이스 신부는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외방전교회를 조직하여 선교에 이바지하고 있는 반면,

  미국에서는 외방 전교에 대해 무관심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곤 하였다.

 

  이처럼 외방 선교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던 두 사람은 1910년 9월, 캐나다의

  몬트리올 (Montreal)에서 개최된 제23차 세계 성체 대회에서 우연히 만나

  외방전교회 창설을 계획하게 되었으며, 이듬해인 1911년 4월 27일 전미 주교회의

  (全美主敎會)의 인가를 거쳐 같은 해 6월 29일 교황 비오 10세가 인준함으로써

  메리놀회가 창설되었다. 메리놀회가 (그 먼 땅에)를 구독하는 독자들을 통해 널리

  알려지자, 교황청  포교성성에서는 메리놀회가 인적 구성은 물론, 사업의

  규모 면에서 충분히 선교 사업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라 파악하고, 동양의 첫 전교지로 중국의 광동(廣東),

  광서(光緖) 교구를 메리놀회에 위임하였다.

  그리하여 1918년 9월 프라이스 신부의 주도하에 네 명의 신부가 중국에 파견되어 사목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진출 1년 만에 프라이스 신부가 사망함에 따라 월시(James E. Walsh,1891~1981)신부가

  중국 메리놀회의 책임자가 되었고, 이제 메리놀회는 광서 동북부 지역과 광동 남부 지역에서

  본격적인 사목을 시작하게 되었다.

  또한 메리놀회 본부에서는 1932년 만주 무순(撫順)지역에, 그리고 1935년에는 일본의 교토 지역으로도

  선교사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메리놀회의 창설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초대 총장까지 역임했었던 월시(J.A. Walsh) 주교

  (1933년 주교 서품)의 사망으로 인해 1936년 7월 홍콩에서 개최된 메리놀회 총회에서

  월시 (James E. Walsh) 주교가 메리놀회의 후임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그가 총장으로 재임하고

  있던 기간(1936~1946) 동안 메리놀회는 2명의 주교, 204명의 신부, 90명의 신학생, 74명의 평신도

  선교사들이 미국을 비롯한 동양의 선교지에서 활동할 정도로 창설 30여년 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큰 성장를 이루었다.

  그러나 1941년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극동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던 메리놀회 회원 203명 가운데 107명의

  회원이 일제(日帝)에 의해 적으로 간주되어 억류되는 고초를 겪어야만 했고, 이 가운데 67명은 본국으로

  송환된 후 또다른 전교지로의 파견을 기다려야만 했다. 또한 1950년 중국의 공산화로 그곳에서 활동하던

  99명의 선교사들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은 박해를 당한 후 중국 본토에서 철수하였으며, 총장 재임 후

  중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월시 주교는 유일하게 그곳에 남아 있다가 공산 정권에 의해

  13년간 (1958~1970) 상해 감옥에 투옥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아시아 지역 선교에 많은 제약을 받자

  외방전교회 창설 당시에는 계획에도 없었던 새로운 선교지로의 진출이 시도되었다.

  1942년 볼리비아를 시작으로,1년 만에 멕시코, 과테말라, 에쿠아도르, 페루, 칠레를 비롯한 케냐, 우간다,

  스리랑카의 아프리카 지역으로도 진출하기 시작하였으며, 27개국에서 800여 명의 메리놀회

  소속 선교사들이 활동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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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메리놀 명칭의 유래

  '메리놀' 이라는 명칭은 메리놀회 본부의 위치에서 유래하였다. 원래 외방전교회는 뉴욕(New York)에서

  40㎞ 떨어진 호오도온 (Hawthorne)에 임시 본부가 있었는데, 창설 1년 만인 1912년 10월에 오시닝의

  작은 언덕 위로 이전하면서 이 건물을 마리아께 봉헌하였기 때문에 '마리아의 언덕'(Mary's Knoll),

  즉 메리놀 (Maryknoll)로 불리게 된 것이다.

                  메리놀 본부-미국 뉴욕 오시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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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한국진출

  삼남(三南) 지방보다 늦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한 평안도 지방은 당시 5개 본당과 50여 곳의

  공소를 파리 외방전교회 신부 3명과 한국인 신부 2명 만이 전담하고 있을 뿐이었으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프로테스탄트는 교육 및 의료 사업을 활발히 전개하여 급속하게 교세를 확장하고 있었다.

  파리 외방전교회의 선교사 부족으로 고심하고 있던 조선대목구장 뮈텔(Mutel) 주교는 평안도 지방의

  적극적인 포교 활동을 위해 상트 오틸리엔의 베네딕도 수도회 (Congregation of St. Ottillien, O.S.B)가

  이 지역을 담당하도록 사우어 (B. Sauer) 대수도원장에게 제의하였다. 그러나 이미 평안도 지방으로

  진출하여 나름대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는 프로테스탄트와 경쟁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한

  상트 오틸리엔의 베네딕도 수도회는 평안도를 포기하고 함경도 지방의 전교를 택하였다. 이에

  뮈텔 주교는 1922년평안도 지방의 전교 문제를 교황청 포교성성(布敎聖省)에 의뢰하면서 이 지역의

  사목을 프로테스탄트 선교사들과 국적이 같은 메리놀회에 위임하는 것을 건의하였다.

 

  중국에 진출해 활동하고 있던 메리놀회는 한국 진출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던 중

  1922년 11월 교황청 포교성성으로부터 평안도 지방의 포교권을 위임받자

  그해 11월 27일 자로 방(P.J. Byrne)신부를 지부장으로 선출하였다. 1923년 5월

  10일 번 신부가 평양지목구 설정 준비 책임자로 입국하였고, 같은 해 10월 22일

  클리어리(P. Clerry,)신부, 11월24일 모리스 (J. Morris)신부가 도착함으로써

  한국 지부가 공식 출범하였다.

  이듬해인 1924년 10월 19일에는 캐시디(J.Cassidy), 뒤피(P.Duffy), 스위니(J.Sweeney)신부가

  메리놀회 수녀 6명과 함께 입국하여 의주(義州)에 정착하였고, 1926년 5월부터 은산(殷山), 마산(馬山),

  비현(批峴), 중화(中和) 등에 본당을 신설하였다. 번 신부는 지목구 설정을 위한 본부를 비현에 설치하여

  본당 신설을 추진하면서 한편으로는 입국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영유(永柔)본당에 '조선어 연구 학교'

  (朝鮮語硏究學敎)를 마련하여 장면(張勉,요한)으로부터 조선의 언어와 풍습을 익히게 한 다음, 포교상의

  요지에 파견하였다. 또한 비현 본당내에서는 1928년부터 메리놀회 신부들에 의해 시약소가 운영되었는데,

  간이 진료소의 역할까지 담당하기도 하였다.

  당시의 교세 현황으로는 1924년 8월 영유 본당에 번 신부 후임으로 모리스 신부, 1926년 5월 은산 본당에

  크레이그(H.Craig)신부, 1926년 8월 마산 본당에 부드(W.Booth)신부,1927년 9월 중화 본당에

  치섬(D. Chisholm) 신부가 본당 신설과 함께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고, 1926년에는 10여 년 간

  본당 신부 부재로 의주 및 신의주 본당 소속 공소였던 비현 본당에 스위니(J.Sweeney)신부가 3대

  주임으로 임명되는 등 총 신자 수가 4,890명에 이르렀다. 또한 1926년 10월에 스위프트(J.Swift),

  스위니(L.Sweeney)신부가 입국하는 등 인적 확보가 이루어지자, 평양 본당에 클리어리 신부, 진남포

  본당에 뒤피(P.Duffy)신부를 임명하여 이제 평안도는 메리놀회 전담 지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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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평양지목구 및 대목구 시기

  교황청 포교성성에서는 1927년 3월 17일 평양지목구(平讓知牧區)를 설정하고 초대 지목구장에

  번 (방)신부를 임명하였다. 이에 번 지목구장은 한국 메리놀회 임시 본부를 비현에서 신의주

  진사동(眞砂洞)으로 이전하였으며, 한~양식을 절충한 연와제(煉瓦製) 성당을 신축하였다. 아시아

  지역의 선교를 목적으로 청설된 메리놀회는 오시닝에 위치한 본부 건물을 중국식과 서양식을

  절충하여 건립하였다. 메리놀회는 이본부 건물을 모델로 하여 포교지에서 건물이나 성당을

  신축할 경우 항상 절충식을 택하였으며, 평안도 지방에서도 마찬가지로 이시기 신설된 성당의

  건축 양식은 유럽의 전형적인 고딕 양식이 아닌 절충식이었다.

  번 지목구장은 파리 외방전교회 베르뇌(Berneux)주교가 순회하며 전교했던 곳과 오래전부터

  교우촌이었던 곳, 그리고 새로 입교한 교우들이 많은 지방을 우선하여 본당 신설을 추진하였다.

  또한 평양지목구의 새로운 중심지를 관서 지방의 중심 도시인 평양으로 이전할 것을 결심하고

  평양에서 북쪽으로 10㎞ 떨어진 서포(西浦)에 본부 설치를 추진하던 중 1929년 8월 메리놀

  외방전교회 부총장으로 피선됨으로써 1930년 4월 평양지목구장을 사임하였다.

 

  그 후임으로 영유 본당의 제4대 주임이었던 모리스 신부가 제2대 지목구장으로

  임명되었다. 모리스 신부 재임 기간 중 평양지목구에서는 36명의 선교사가 일선

  사목에 임했는데, 안주(安州). 중강진(中江鎭). 숙천(肅川). 강계(江界).

  대신리(大新理) 본당 등이 신설되어 19개의 본당에 134개 공소로 늘어났으며,

  총 신자수는 17,738명으로 놀라운 교세증가를 거듭하였다. 메리놀회는 한국

  교회의 자립을 위한여 무엇보다 방인 사제와 수녀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평양지목구 설정 당시에 신학생은 불과 3명이었으나, 1930년 양기섭(梁基涉,베드로),

  1931년 강영걸(康永杰, 바오로), 1933년에는 홍용호(洪龍浩, 프란치스코)부제가 사제로 서품됨으로써

  1936년에는 방인 사제가 11명으로 증가하였다.

  그리고 김필현(金必現, 루도비코), 박용옥(朴龍玉, 디모테오) 등 2명을 로마 울바노(Urbano) 대학에,

  강현홍(康賢洪, 사도 요한)을 일본 도쿄(東京)의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학교에 유학을 보냈는데,

  이들은 훗날 그곳 유학지에서 처음으로 신품을 받는 방인 사제가 되었다. 또한 방인 사제 양성 못지않게

  한국 교회에 있어서 방인 수녀회의 설립이 시급함을 강조한 모리스 신부에 의해 1932년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가 설립되었는데, 초창기 이 수녀회의 양성은 메리놀 수녀회에서 담당하였다.

  일제 치하에 있는 민족의 부흥과 가톨릭 진흥을 위해 '가톨릭 운동 연맹'을 조직하였으며, 이 가톨릭 운동

  연맹 주최로 1935년 10월에는 한국 전래 150주년 기념 행사를 평양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하기도 하였다.

  예비자 교육을 전담할 전교회장 양성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1933년부터 해마다 '평양지목구 전교회장

  강습회'를 개최하였고, '하기 가톨릭 대학'도 개설하여 가톨릭 청년 지도자를 양성하였는데,

  이들은 전교 최일선에 파견되어 문맹 퇴치 사업과 복음 전파에 진력하였다.

  1936년 9월 모리스 지목구장의 사임으로 평양지목구장 서리(署理)로 임명된 부드(W.Booth, 부(夫)

  신부는신자들의 신심과 교회에 대한 열성을 신앙의 생활화로 이끌어가기 위해 교리경시대회

  (敎理競詩大會)를 해마다 개최하였는데, 인식을 고조시키고 공동 참여 의식을 높여주었다.

 

  한편, 1938년 10월 오셰아(W.O'Shea, 吳)신부가 제3대 평 양지목구장으로

  임명되었고, 1939년 7월 11일 평양대목구로 승격 함에 따라 1939년 10월 29일

  주교로 착좌하였으나, 제2차 세 계 대전의 확대로 1942년 6월 1일 오 주교를

  비롯한 메리놀회 선 교사 전원이 미국으로 강제로 송환되었다. 메리놀회는

  평안도 지방에 총 51명의 선교사를 파견하여, 21개의 본당을 설립하였으며,

  방인 신부 8명 및 수閽자 39명 배출, 그리고 총 신자가 26,424명에

  달하는 등 교세 증가에 크게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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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발전 및 변모

  해방 후 남북한 분단으로 북한 지역의 선교지를 잃은 메리놀회는 1947년 1월,3명의 신부가 입국하여

  서울 명동 성당 경내의 전(前) 일본인 성당에서 체재하였다. 뒤이어 2월과 4월, 메리놀회 신부들이

  속속 입국하면서 본격적인 사목 활동을 전개하였다.

  해방과 더불어 한국 교회가 양적, 질적인 측면에서 큰 성장을 이루자 1947년 8월12일 교황 비오 12세는

  초대 평양지목구장이었던 번 신부를 초대 교황 사절로 임명하였고, 이에 번 신부는 같은 해 10월 6일

  입국하여 이후 1949년 6월 주교로 성성(聖成)되었으나, 서울에 주둔한 공산군에 납치되어 만포에서

  중강진에 이르는 250리 '죽음의 행진' 끝에 1950년 11월 25일 중강진 하창리(下昌理)에서 병사하였다.

  한편 1948년 11월경 메리놀회의 크레이그 신부는 당시 교황 사절이었던 번 신부로부터 전국적인 차원의

  교회 사업 협의체의 설립을 위촉받아 한국 천주교 중앙위원회를 구성하고 사무 국장을 역임하였는데,

  이후 이 협의체는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Catholic Conference of Korea)로 확대 개편되었다.

  1950년 9월, 당시 미8군으로 미군 부대와 포로 수용소에서 사목하던 평양대목구장 서리 캐롤

  (G. Carroll, 安)몬시뇰은감리교 선교사 쇼우(W. Show)박사, 극동 사령부 군목과장 이반 엘 베넷

  (Ivan L.Bennett)과 함께 군종 제도의 창설을 제의함으로써 1951년 2월 7일 군종 제도의 성립을 보게

  되었다. 그는 또 가톨릭 구제회(NCWC)한국 지부장직을 수행하는 것 외에 1950년에는 나환자들의

  구호 및 의료 사업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서울 오류동에 성 라자로 마을을 설립하였다.

  교세가 점차 확장됨에 따라 1952년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주교는 충북 지역의

  사목을 메리놀회에 위임하여 5명의 선교사들을 청주에 파견되었다.

  1958년 6월 23일 충청북도 감목대리구가 청주대목구로 독립하여 단양군과

  제천군을 제외한 충청북도 일원이 사목구역으로 설정되었으며, 초대 청주

  대목구장으로 임명된 파디(j.Pardy)신부는 같은해 9월에 주교로 착좌하였다.

  또한 1961년 6월 6일에는 인천 대목구 설정과 함께

  맥노튼(W.McNaughton, 나길모 羅吉模)신부가 주교로 서품되어 초대

  인천대목구장으로 임명되었으며, 이듬해인 1962년 3월 25일에 인천시, 부천시 및 강화군, 김포군,

  옹진군 지역을 사목 구역으로 하는 인천교구가 설정되었다.

  1923년부터 1993년 까지 한국에서 사목을 담당한 메리놀회 선교사들은

  150명의 사제, 11명의 수사, 30명의 평신도 선교사의 16명의 신학생 등 총

  207명에  이르고 있다.

 

  1936년 9월 모리스 지목구장의 사임으로 평양지목구장 서리(署理)로 임명된

  부드(W.Booth, 부(夫))신부는 신자들의 신심과 교회에 대한 열성을 신앙의

  생활화로 이끌어가기 위해 교리경시대회(敎理競詩大會)를 해마다 개최하였는데,

  인식을 고조시키고 동동 참여 의식을 높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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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사 도 직 활 동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메리놀회는 현실에 맞는 사목 활동을 지향하여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38명의 선교사들이 8개 교구에서 본당 사목뿐만 아니라 특수 사목에도 주력하였다. 1981년에는

  메리놀 수녀회와 함께 경기도 성남에서 노동자, 도시 빈민 등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기초 공동체 활동을

  시작하여 1989년까지 영적 지도 피정 등을 담당하였고, 플람(B. Fullam, 원일엽)신부는 경로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충북 청주의 성심원에서 1996년 3월 20일 심장마비로 사망할 때까지 영성 지도를

  담당하기도 하였다.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 본당(1987) 및 가락 시장본당(1991) 등 준본당의 사목을

  담당하여 본당의 외적인 비대화와 성전의 대형화가 자져오는 결점을 보완하는 효과적 방안을 제시하였다.

  이외에도 병원 사목, 구라회, 아동교육, 사회사업, 마리아 사제 운동, 신학교 지도신부(서울교구)

  한국외방선교회 지도신부 등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5명의 회원을 포함하여 1999년1월 현재 23명의

  메리놀회선교사가 사목활동을 하고 있다.  

 

 
 
 
 


  
함제도 지부장 신부님께서 지도신부로 활동중인 한국외방선교회에서
      교황대사님과 사제 그리고 신학생들과 함께...


   
메리놀회 한국지부 사제들


  
길갈메로 신부님께서 지도신부로 활동중인
     쟌 쥬강의 집 노인분들과 함께